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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향인 소치의 테니스장 리모델링에 참석한 샤라포바

샤라포바, 인생 제2막을 준비하다<2편>

김홍주 기자
202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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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포바, 그녀는 누구인가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샤라포바의 은퇴에 대한 실감은 잠시 접고 샤라포바가 어떠한 선수였고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잠깐 되돌아보자. 마리아 샤라포바라는 이름은 이미 테니스를 넘어 하나의 글로벌 브랜드가 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타고난 테니스 실력에 더해 뛰어난 미모와 언변, 나아가 놀라울 정도의 경영 감각까지 그녀가 손대는 것은 금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외모와 같이 처음부터 화려하게 살아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의 시작은 의외로 매우 소박하고 어찌 보면 시대적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없을 수도 있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샤라포바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대부분의 삶을 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거의 미국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많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녀의 부모님인 유리와 옐레나는 지금의 벨라루스에 위치한 도시 고멜에서 살고 있었는데, 인근 체르노빌에서 지난 1986년 4월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인해 고멜을 떠나 친척들이 있는 시베리아의 냐간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 후 그들은 1987년 유일한 자식인 샤라포바를 낳게 되었고 2년 후 날씨가 더 따뜻하고 생활하기 편한 흑해 인근의 소치로 다시 한번 이사를 가게 된다. 온화한 기후로 예전부터 러시아 스포츠의 메카로 여겨졌던 소치에서 그들은 생전 접해보지 못한 수 많은 스포츠를 목격하게 된다. 샤라포바가 테니스에 입문하게 된 계기 역시 이 곳에서 테니스를 처음 접했던 부모님이 그녀를 인도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이곳에서 아버지가 사귄 친구가 바로 훗날 러시아 남자선수 중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예브게니 카펠니코프의 아버지인 알렉산더였다. 알렉산더는 유리에게 테니스를 알려주었고 4살이던 샤라포바에게 테니스 라켓을 선물하며 샤라포바의 꿈만 같은 테니스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만약 체르노빌 사건이 터지지 않아 샤라포바의 부모가 아직도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샤라포바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어린 샤라포바를 테니스에 입문시킨 뒤 놀라울 정도의 성장세를 지켜본 아버지 유리는 생업을 뒤로 하고 샤라포바의 성공을 위해 더욱 더 매진하게 된다. 또 한 번의 기회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적인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미국)가 참여한 테니스 클리닉에서였다. 나브라틸로바는 샤라포바를 가리키며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아버지에게 하게 되고 그는 바로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비자 문제로 바로 출국이 어려웠던 아내를 뒤로 하고 6살의 어린 샤라포바와 함께 단돈 100만원 남짓한 돈을 가지고 미국행에 오른 그는 나브라틸로바가 추천해준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이후 IMG 아카데미로 개명)가 있는 플로리다로 향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갖은 노동을 하며 딸의 테니스 레슨비를 마련하는 것에 전념했다. 샤라포바를 본 아카데미 측에서는 그녀의 놀라운 재능을 눈 여겨 본 후 입학을 약속했는데 아카데미 규정상 9살이 될 때까지는 입학이 어려워 아버지의 고생은 몇 년간 계속되었다.


이후 9살이 된 샤라포바는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게되었고, 연간 당시 4천만원이 넘는 수강비는 전액 무료로 수혜 받게 되었다. 어린 나이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고향에서 멀리 떨어지게 된 샤라포바였지만, 그녀는 특유의 자신감과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이 시기를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어 갔다. 러시아 군인 정신을 늘 강조하며 특히 기본기 연습에 충실할 것을 명심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실전 경기를 더욱 좋아하는 타 연습생들과는 달리 오히려 훈련 시간을 더욱 치열하게 보냈다. 샤라포바는 특히 늘 습관처럼 시행했던 섀도우 스트로크, 즉 마치 공을 치는 것처럼 수차례 라켓을 휘두르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고 이는 프로 데뷔 후에도 매 경기 목격될 정도로 그녀의 기본기에 대한 집념은 입이 아플 정도로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다.


또 특이한 점은 엄청난 키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유연성 및 응용력을 지녔다는 점인데, 그로 인해 어릴 때부터 왼손으로 포핸드를 치는 연습을 자주 했었고 심지어 이는 프로 생활로도 이어져 백핸드로 깊게 공이 들어올 때는 왼손으로 로브를 올리기도 했다. 그녀의 아카데미 시절 코치에 의하면 샤라포바는 두려움이 없어 보일 정도로 항상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성숙한 마인드를 지녔다고 했다.


금발의 앳된 외모를 지녔던 샤라포바는 입학 후 4년 뒤인 13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주니어 무대를 강타하며 테니스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 시켰는데 저명한 주니어 대회 중 하나인 에디 허 인터내셔널에서 13세의 나이로 16세 이하부 우승을 차지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를 눈여겨본 인디언웰스 대회 관계자가 이듬해인 2001년 4월 해당 대회에 그녀를 와일드카드로 섭외하며 불과 14살의 나이로 프로 무대에 데뷔를 하게 되었다.


보통 주니어들이 처음 프로 무대에 데뷔 시 첫 경기를 지는 경우가 많은데 샤라포바는 첫 경기를 가볍게 이기고 두번째 경기에서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모니카 셀레스(미국)와 센터코트에서 빅 매치를 연출하며 자신의 등장을 정말 화려하게 알렸다. 이듬해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 주니어 단식 준우승을 차지하며 주니어 시즌을 마무리한 샤라포바는 16세인 2003년 풀 시즌을 소화하며 본격적인 프로무대에 발을 디뎠고 ‘마리아 시대’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3편에서 계속)


<테니스코리아 전채항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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