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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가 탄생하기까지(1편)

관리자 기자
199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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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팬들은 이번 US 오픈에서 다벤포트나 힝기스, 또는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가 세레나 보다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세레나가 가능성은 있는 선수지만 아직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기에는 캐리어가 부족하 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또한 다벤포트와의 4강전에서 그녀의 돌풍이 끝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 지만 세레나는 이겼고 (비록 자매 대결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결승에서 힝기스와 격돌했다. 미스 스위스는 이미 몇 년째 세계 정상권에 머물고 있는 스타였기에 세레나의 우승 확률은 더욱 희박해 보 였다. 하지만 세레나를 믿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였다. 리차드 는 대회 전부터 올 US 오픈 결승에는 비너스와 세레나 간의 자매 대결을 벌일 것으로 호언장담했다. 그의 예언은 50% 적중했고(비너스가 떨어졌기에), 자매 중의 한 명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언은 100% 맞아떨어 졌다(세레나가 우승했으므로). 시속 2백킬로미터에 이르는 초고속 서비스에 있는 힘을 다해 치는 그라운드 스트로크. 세레나의 플레이는 거칠 것이 없었다. 탄탄한 체격에서 나오는 세레나의 힘은 시간이 지나도 멈출 줄 몰랐다. 세레나는 매치 포인트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치며 한 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경험 많은 힝기스 보다 더 침착 함을 잃지 않았다. 올 2월 파리실내대회에서 첫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후 불과 6개월 여만에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 세레나 의 고속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세레나는 그 중간에도 인디안웰즈, LA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번 대회의 선 전을 예고했었다. 시간을 거슬러 98년 1월로 올라가보자. 작열하는 여름 태양이 내리쬐이는 호주 멜버른의 내셔널테니스 코트. 1번 코트에서 비너스와 세레나가 맞붙었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좀처럼 보지 않는 샘프라스가 코 트 한 켠에 나타났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샘프라스는 그 경기를 끝까지 관전했고, 경기 후 "코트에서 전율 할 정도의 진지함을 느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당시에는 언니 비너스가 세레나를 7-6 6-1로 물리쳤지만 그 때는 아직 세레나가 투어 맛을 모를 때. 비너스는 "세레나는 누구에게도 지길 싫어한다. 동생은 누구에 게도 두 번 지지 않는다.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이기기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嗾駕병?그 전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나이 때문에 동생이 아직 프로 데뷔하기 전인 97 립튼 챔 피언십에서 비너스는 결승전에서 힝기스에게 패한 후 "세레나가 투어에 참가하면 동생과 내가 우승을 다 툴 것이다"고 예언했다. 당시 사람들은 비너스가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비너스는 US 오픈에 결승에 진출했고, 세레나는 11월의 아메리테크컵에서 피에르스, 셀레스를 연파하며 윌리엄스 자 매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세레나가 셀레스를 꺾었을 때 언니 외에 또 한 사람이 이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는 91년부터 4년 가량 윌리엄스 자매를 지도했던 릭 메이시 코치였다. 기자가 95년 미국 플로리다의 릭 메이시 아카데 미를 찾았을 때 메이시 코치는 "윌리엄스 자매는 머지않아 여자 테니스계의 정상에 설 것"이라고 얘기했 었다. 하지만 세레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아버지이다. 그녀의 오늘을 얘기할 때 아버지 리차드를 빼놓을 수 없다. 언니보다 15개월 늦게 태어났고 키도 10센티미터나 작은 세레나에 대해 리차드는 "마지 막에는 세레나가 언니를 능가할 것"이라고 얘기했기 때문. 글/김홍주 기자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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