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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테니스 전담 지도자로 활동 중인 손승리 코치. 사진= 최대일(스튜디오 UP)

내 존재 이유는 '테니스', 지도자 손승리가 품은 꿈

이은미 기자
201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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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코리아= 이은미 기자]현역 시절은 눈에 띄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테니스를 시작해 대학교 때 부상을 당하면서 라켓을 내려놓아야 했고 테니스 선수로서의 꿈을 다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지도자’ 손승리는 달랐다. 선수의, 선수를 위한, 선수에 의한 그의 지도 철학이 마법처럼 통하고 있다.
 
현재는 대한체육회 테니스 전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테니스 국가대표 후보 선수 훈련을 맡고 있다. 지난 5월부터 한 달 간 정현(한국체대, 삼성증권 후원, 58위)의 임시 코치를 맡기도 했다. 선수에서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손승리 코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찬란한 시간들
 
손승리 코치는 대전에서 개인 레슨을 하며 첫 지도자의 길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고 이를 보완하고자 선진 클럽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일본으로 떠난다. 독하게 마음먹은 그는 일본에 있는 테니스 클럽 중 가장 세미나가 많다고 소문난 일본 테니스 트레이닝센터(이하 TTC)를 선택했다.
 
"일본 체류 초기에는 '단순히 선수였을 때의 경험을 주무기로 지도자 생활을 하면 되겠다'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며 "선수와 지도자는 엄연히 다른 직업이다. 선수 출신이 반드시 명감독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경험뿐만 아니라 그 외 많은 공부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 당시 정신적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언어 문제도 있었고 자주 진행되는 세미나에 온 신경을 기울였더니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몸에 문제도 생겼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두 번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며 아찔한 경험담을 털어놓으면서도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고 답했다.
 
이후 손승리 코치는 한국에 있는 지인들의 지속적인 권유로 일본을 떠나 전곡중학교 코치를 맡게 됐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터졌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어느 날 TV를 시청하던 중 갑상선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증상이 모두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바로 병원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면서 "암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집에 가야 하는건지 전곡중으로 가야 하는건지 앞이 캄캄했고 멍해졌다."
 
결국 손승리 코치의 발걸음은 전곡중으로 향했다. 낙심한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역시 학생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테니스를 하니까 오히려 좋았다. 혼자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즐거움도 사라진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만큼은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도 모두 잊어버렸다"며 "5월 30일이 생일인데 5월 29일에 암 수술을 받았다.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손승리 코치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현재 왕성한 지도자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가 병마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가 말하는 '우리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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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니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손승리 코치
 
 "집 나온 지 6년째에요. 일명 '사이버 아빠'지요."
 
사람은 누구나 우여곡절과 휘황찬란의 변주곡을 써 내려간다. 어느 날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내부적 문제로 1년 6개월 동안의 지도자 생활을 관둘 무렵, 중국과의 교류전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며 "아내는 중국 쓰촨성 청두 체육운동학교 테니스 선생님이다"면서 "말은 안 통했지만 이 여자라면 절대 배반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사실 첫 인상은 굉장히 무서웠다. 내 이상형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사람에게 계속 마음이 있어 꾸준히 어필을 했고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며 연애담을 회상했다.
 
손승리 코치는 현재 대한체육회 테니스 전담 지도자로 활동하는 바람에 중국에 터를 잡은 가족들과 장기간 떨어져 지내고 있다.
 
"중국에서 좋은 조건으로 많은 제안이 들어왔지만 테니스 공부를 더 하고 싶었기에 대한체육회 테니스 전담 지도자의 길을 선택했다"며 "아들과 딸 모두 취미로 테니스를 한다. 주말에는 각종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내가 없으니까 다른 친구들의 아빠들이 놀아주곤 한다. 이런 날에는 아들이 꼭 전화를 걸어 '아빠 빨리 오세요! 제가 자고 일어났을 때 이곳에 계셔야 해요!'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정말 속상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실 거취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대한체육회 계약이 4년 계약이긴 하지만 연임이 되기 쉽지 않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무작정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안정권에 들어갈 때까지만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빠 그리고 남편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는 가족들이 있기에 손승리 코치는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손승리 코치 리더십의 비밀
 
홍성찬, 정윤성, 강구건 등 한국 테니스의 미래들이 모두 손승리 코치의 손을 거쳐갔다. 2013년 그는 한국 대표팀을 사상 첫 주니어 데이비스컵 준우승에 올려 놓았고 이듬해에도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안았다.
 
그는 고집불통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업적은 자기의 소신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을 먼저 생각한 결과였다. "선수를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 패배 후 그저 꾸짖기만 한다면 선수는 더욱 패닉 상태에 빠진다"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패배 원인을 잘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전술이 잘못됐는지 어떤 피지컬이 더 필요한지 조목조목 따져봐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손승리 코치가 요즘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데이터의 활용이다. "예전에는 노트북이 그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기술, 전술, 피지컬 능력 등 선수들의 히스토리를 수집하고 있다. 여기서 얻어지는 것이 꽤 많다. 또 경기를 보면서 이런 데이터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많아 이것저것 실험하고 있다"며 자료수집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인터뷰 도중 가방에서 꺼낸 노트북 안에는 손승리 코치가 손수 만든 선수들에 대한 각종 데이터가 들어있었다. 기자에게 데이터 분석법을 알려주는 모습에서 그의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지도자 생활, 끝은 없을 것"
 
손승리 코치의 지도자 생활이 어느덧 19년째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테니스' 생각으로 가득했다. 지금도 그는 한국 테니스의 뿌리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음표를 붙인다.
 
"테니스를 지도한다는 것은 단지 테니스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테니스의 기본 공부를 하면서도 거기에 필요한 역학, 심리학 등을 공부 중이다"면서 "최근에는 스포츠 윤리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앞으로는 심리학에 대해서도 파고들 것이다."
 
언제까지 지도자 생활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지도자 생활이 여전히 설렘으로 가득하다. 앞으로 이 일의 끝은 없을 것이다"고 응답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든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19년간 테니스 인생을 묵묵히 걸어온 손승리 코치가 해온 노력은 1만 시간의 법칙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인생의 승리는 자기가 맡은 일에 전력투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손승리의 인생 승리는 머지 않았다.
 
-기사 전문은 테니스코리아 6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이은미 기자(xxsc7@tennis.co.kr) 사진= 최대일(스튜디오 UP)
손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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